폭발 임박 ? 오리온자리에 무슨일이!(2)
폭발 임박 ? 오리온자리에 무슨일이!(2)
  • 김정현 기자
  • 승인 2020.01.23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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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최근 갑자기 어두워진 베텔기우스에 대한 포스트를 남겼고, 오늘은 그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베텔기우스(또는 베텔게우스)를 검색해보시면 상당히 많은 기사나 포스트가 나오고, 아직 저널에 정식 게재되기 전의 소식까지도 앞다퉈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많다는 뜻이겠죠.

이런 관심은 결국 우리가 베텔기우스 초신성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궁금증 때문일 것입니다. 지구와 약 600광년 떨어진 베텔기우스가 이미 수백 년 전에 폭발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생애는 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에 역사적인 사례들을 살펴보고 확률을 생각해보려고 두 번째 이야기를 남겨봅니다.

사진 : 베텔기우스가 어두워지기 전의 오리온자리 (ⓒ Carlos Fairbairn, 2019)

자료를 조사하면서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천문학의 발전은 제 개인적 소견으로 망원경의 활용 전과 후로 나눠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망원경이 활용된 이래 우리 은하에서는 단 한 번의 초신성도 발견된 적이 없더군요. 우리 은하에서 가장 마지막에 발견된 초신성에 대한 유럽의 기록은 케플러(1571 ~ 1630)가 자세히 남겼는데, 이 시기는 1604년으로 망원경이 유럽에서 발명되려던 찰나였습니다.

망원경의 발명은 여러 설이 있는데 많은 지지를 받는 한스 리퍼세이설의 경우가 1608년이고, 자하리야스 얀센설이 경우 1590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천체관측에 이용된 첫 기록자는 토마스 해리엇으로 1609년 7월에 망원경을 통해 월면도를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갈릴레오는 이보다 약간 늦은 1610년 3월에 시데리우스 눈치우스》(Sidereus Nuncius; 별세계의 사자)를 발표하여 중세 우주관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목성의 위성관측을 통해 태양을 중심을 돌지 않는 천체가 있는 것을 발견한 것 등..) 갈릴레오가 이런 관측자료에 대한 조언을 구한 사람이 바로 케플러였고 그의 도움 덕분에 갈릴레오는 든든한 학술적 지원세력을 얻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갈릴레오의 이러한 관측자료는 케플러가 연구를 통해 쌓아온 충분한 배경지식을 결집할 수 있도록  방아쇠를 당겼고, 이듬해 굴절광학(Dioptrice)이라는 저서를 1611년 출간합니다. 여기에 바로 케플러식 굴절망원경에 대한 이론이 나타나며 현대 기하광학의 초기 개념들이 성립됩니다. 케플러식 굴절망원경이라는 말은 천체관측에 아주 약간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다 들어봤을 것이며, 현대의 망원경이 바로 케플러식 굴절망원경입니다. 케플러는 이미 1600년 초반부터 광학연구를 해왔으며 《비텔로를 보완한 천문학의 광학적 측면에 대한 해설》(Ad Vitellionem Paralipomena, Quibus Astronomiae Pars Optica Traditur)이라는 책을 통해 광학의 기초를 세웠다 평가받습니다.

케플러는 어린 시절이었던 1577년, 그의 어머니가 높은 장소로 데려가서 대 혜성을 보았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그런 유년시절의 경험이 그를 대 천문학자로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케플러는 천문학적 이론 정립을 위해 자세한 관측 기록이 필요했고, 기록의 정밀도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 티코 브라헤와의 교류를 통해 기록을 공유합니다. 이후 1601년 티코가 사망하면서 38년간 남긴 그의 관측 기록을 입수합니다. 티코 브라헤는 표준 항성목록이라는 자료를 출판했는데 거기 있는 항성들의 위치 정밀도는 25초각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25초각은 별이 약 1.7초 동안 천구에서 회전하는 각도입니다. 이러한 정교한 관측 기록은 케플러가 초신성을 발견하고 정확한 관측 기록을 약 1년간 남길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럼 케플러 초신성을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SN1604 (케플러 초신성, Type Ia)
1604년 10월 9일 첫 관측, 최대 광도 -2.5등급(가장 밝을 때 금성보다는 어두움), 3주 이상 밝게 관측 가능, 위치 - 뱀주인자리 발 부근(위도 -21° 29′), 지구와의 거리 약 14,000광년

그림 : 케플러의 초신성(뱀주인 발 부근) (ⓒ Kepler, 1604)

케플러는 이 초신성 출현에 관한 소식을 들었으나 날씨 문제로 며칠 있다 관측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티코가 초신성을 관측할 때 시도했던 것처럼(후술하겠습니다) 연주시차를 측정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14,000년 광년 떨어진 별의 연주시차 측정은 지금도 불가능합니다. 이를 통해 초신성은 태양계 내의 현상이 아닌 항성의 활동으로 생각했고 천체가 불변한다는 통념을 의심하였습니다.

한국 선조실록에도 이 초신성에 관해 7개월간 약 130여 회의 기록이 남겨져있고 최초 관측 기록은 10월 13일입니다. 아래 자료는 한국과 유럽의 초신성 SN1604의 밝기 비교 자료입니다. 한국의 데이터가 유럽의 자료와 비교해도 꽤나 정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3등급 이하로 떨어진 이후의 기록은 없지만 우리나라 관측자료의 객관성이 높다는 증거로 사용됩니다.

그래프 : 한국과 유럽의 SN1604 관측 기록(광도) (ⓒ David A. Green, 2003)

거대한 혜성은 연달아서 온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초신성도 좀 비슷한 것 같은데요, 다음 초신성은 바로 티코의 초신성입니다. 티코가 당대 최고의 관측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초신성 관측으로 인해서입니다.

SN1572 (티코 초신성, Type Ia)
1572 11 6일 첫 관측(티코는 11일), 16일 후 -4등급 도달, 1574년 초반까지 관측이 가능(티코는 14개월 동안 관측), 위치 - 카시오페이아(위도 +64° 09′), 지구와의 거리 약 8,000광년

그림 : 티코의 초신성 (ⓒ Tychonis Brahe, 1573)

새로운 별의 탄생은 기존 절대불변의 신이 만든 완전무결한 우주를 붕괴시키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티코는 이 초신성으로 인해 별도 변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천체 카탈로그를 기록하고 업데이트하는 작업의 당위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SN1604를 관측한 케플러가 시도한 연주시차 측정 시도는 티코에게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SN1572의 연주시차가 없음을 확인한 티코는 이 현상이 대기가 아닌 우주에서 발생한 현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초신성은 제대로 된 서양 최초의 초신성 관측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초신성에 관해서는 명나라의 기록은 있으나 전반적으로 동양의 기록이 부족하며 한국, 일본의 기록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한국의 기록이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관심이 있는 분은 David A. Green의 The Historical Supernovae라는 논문을 읽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왜 없을까요? 11월에 장마가 있진 않았을 것이고, 발생 위치가 카시오페이아자리였던 만큼 한국에서는 11월 중순 밤 10시경에 머리 위에 남중했을 테니 것을 못 봤을 리도 없고, 심지어 티코 브라헤의 기록에 따르면 -4등급이었다니 말입니다. 뭔가 좀 미스터리합니다.

표 : 역사상의 초신성 관측기록 (ⓒ David A. Green, 2003)

위의 표는 앞서 언급한 논문에 있는 자료로, 역사상의 초신성 관측 기록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모든 초신성의 관측 기록이 있는데 반해 Many라고 적힌 초신성은 티코와 케플러의 것이 유일합니다. (이 표에서 정리된 것과 다른 주장도 많으니 그냥 참고만 하세요.) AD369의 초신성은 초신성이 아니라는 설도 많아 저는 이번 포스트에서 제외했습니다.


티코 이전의 초신성은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181년에 출현했는데 전반적으로 자료가 부족한 편입니다. 따라서 초신성 Type도 유추하기 힘듭니다. 1181년이면, 우리나라는 고려 무신정권 시대 초기이며 유럽은 3차 십자군 전쟁 직전에 해당되는 시기입니다. 이 초신성은 중국과 일본의 관측이 주를 이루며 유럽 기록은 영국 지자기 학자인 Alexander Neckam의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역시 카시오페이아자리에서 출현했으나 우리나라의 기록은 역시 없습니다.

SN1181(Type ?)
1181년 8 4~6일 처음 중국과 일본에서 관측 기록이 나타남(8개의 독립적인 문헌에 기록 등장), 최대 밝기 약 -1등급,  185일 동안 관측, 위치 - 카시오페이아(위도 + 64 ° 49.7 '), 지구와의 거리 약 8,500광년

 
그림 : 중국 문헌통고에 나타난 초신성 기록

다음 초신성은 역사상 가장 주목할
초신성인 황소자리 게성운입니다.

  SN1054 (게성운, Type II)
1054 7 4일 처음 관측, 중국 천문학자들의 기록에 의해 -6등급으로 추정, 2년간 관측 가능(약 23일 동안 주광 관측 가능), 위치 - 황소자리(위도 +22° 01'), 지구와의 거리 약 6,500광년

사진 : 게성운 (ⓒ NASA, ESA, G. Dubner)

이 성운은 1054년 황소자리에서 폭발한 초신성의 잔해입니다. Type II 형태의 전형으로 만약 베텔기우스가 폭발하면 이와 유사한 형태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저 게모양은 현시점인 2020년으로부터 966년 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퍼져나간 형태가 됩니다. 아래 영상에서 지난 50년 동안 점점 퍼져나가는 게성운의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SN1054 초신성 폭발로 만들어진 게성운은 과거에는 매우 밝은 성운이었으나 현재는 상당히 어두워져서 내부의 필라멘트 같은 세세한 구조를 보려면 250mm 정도 크기의 망원경이 필요합니다. 동영상 아래 저희가 이전에 포스팅한 "게와 함께한 시간"이라는 글도 한번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만약 베텔기우스가 이미 폭발했다면 현재 그 위치에서는 마치 게성운 처럼 퍼져있을 가능성이 높지요. 이 성운의 크기가 커지는 사실은 1928년 에드윈 허블의 관측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허블은 자신의 관측자료와 중국 송나라 천문학자들이 기록을 근거로 삼아 별의 폭발 잔재임을 주장했습니다.

이 초신성은 역사상 가장 밝았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매우 상세하게 그 밖에도 일본, 이라크, 뉴멕시코의 인디언 기록에서도 관측자료가 나타납니다. 반면 유럽의 기록은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1054년은 가톨릭이 동서방으로 분열이 발생한 시기로 시대적으로 종교색이 매우 강했을 때입니다. 아무래도 이 시기는 서양의 발전이 동양에 미치지 못했다는 예시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유럽의 자료가 2개월 앞선 것이 있다 하여 서양의 기록이 더 정교하다 주장하기도 하나, 유럽에서 잘못 썼거나 중국에서 기상문제로 해당 시점에 관측을 못했다고 보는게 합리적일 것입니다당시 중국은 데이터를 조직적으로 관리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초신성이 폭발했던 당시 우리나라의 왕조인 고려는 천문을 관측하는 국가였습니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천문 관측을 위한 사천대라는 기관도 존재했습니다. 특히 SN1054가 폭발한 문종시대의 1047년 기록에 따르면 일식을 맞추지 못한 관리를 파직한 기록도 전해지며 역서를 새롭게 편찬하기도 했습니다. SN1054는 한국에서 관측할 수 있는 게자리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이를 관측한 자료가 없다는 것은 국내에서 주장하는 몽골의 침공 등에 의해 소실되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줍니다. 개인적으로 또 한 번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아래 사진은 고려 시대에 천체를 관측했다는 첨성대의 모습으로 개성이 있다고 합니다.

사진 : 개성 첨성대 (ⓒ 중부일보, 2015)

더 과거에 폭발한 초신성?

 

아래 사진은 초신성 폭발의 잔해로 만들어진 베일 성운입니다. 실제로 관측해보면 경이로운 모습을 보실 수 있는데요. 대략 300mm 정도의 망원경이 있으면 그 디테일한 구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물론 저 사진처럼은 아니지만요)

사진 : 베일 성운 (ⓒ Anis Abdul, 2019)

이 베일 성운이 얼마나 큰가 하면, 위 사진의 왼쪽 위에 있는 용? 해마? 같은 부분을 아래 성도와 맞춰보시면 감을 잡으실 수 있습니다. 대략 그 폭이 2.5도 정도 되는데 저 사진의 성운들 사이에 태양을 5개 정도 늘여놓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Robert A. Fesen의 2015년 논문에 따르면 이 베일 성운은 21,000년 전에 폭발한 Type II 초신성의 잔해로 추정됩니다. 베텔기우스가 폭발하여 20,000년이 흐르면 이런 형상이 될 수도 있겠죠?


SN1006(Type Ia)
1006년 4월 30일 ~ 5월 1일 사이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 이집트 천문학자의 추정에 따라 약 -7.5등급으로 추정되며 중국 천문학자들은 밤에 물체를 분간할 수 있었다고 남겼음(당연히 낮에도 보였을 것입니다), 위치 - 이리자리(41° 57′), 지구와의 거리 약 7,200광년

1006년에 폭발한 이 초신성은 가장 밝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초신성입니다. 그런데 초신성이 나타난 위치는 한국에서는 남해나 제주에서 관측되는 별자리인 이리자리’였기에 우리나라에서는 관측이 불가능했고 자료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관측에 유리한 위치인 중국, 일본에서 관측 자료가 나타납니다. 또한 중동과 북미의 관측 기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위도 47.5 °에 있는 스위스 수도원에서도 관측했다는 자료가 있다 하나 그 위도에서 저 고도의 별을 봤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폭발 위치가 잘못되었거나, 수도원 사람들이 거짓말을 했거나...)

아래 사진은 Type Ia 초신성이었던 SN1006의 잔해로 베텔기우스와는 좀 다른 형태로 진화한 항성의 시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진 : SN 1006 초신성 잔해 (ⓒ Smithsonian Institution, 2008)

이제부터는 살펴볼 세 가지 초신성은 너무 오래전 기록이라 신빙성이 다소 떨어질 수 있습니다.

SN393(Type II or Ib)
393년 2월 또는 3월에 폭발 추정, 약 10개월간 관측, 최대 -1등급으로 추정(D. H. Clark & F. R. Stephenson, 1975), 위치 – 전갈자리(위도 −39.8°, 한국에서는 초기 시점에 계절 상 관측이 안되었을 수도 있음), 지구와의 거리 약 34,000광년

SN386(Type II  or core-collapsed Type cIIb/Ibc)
386년 4월 또는 5월에 폭발 추정, 관측 기간 미상, 추정 등급 +1.5등급, 위치 – 궁수자리(−19 ° 25 ′), 지구와의 거리 약 16,000광년

SN185(Type Ia 추정)
185년 12월 7일 폭발 추정(중국 천문학자인 后汉书의 기록), 약 8개월 동안 관측, 로마 문학의 기록을 통해 -4등급으로 추정(Richard Stothers, 1977), 위치 – 컴퍼스와 센터우르스 자리 사이(위도 −62° 30′, 한국에서는 관측 불가), 지구와의 거리 약 9100광년


이상 우리 은하에서 나타난 8개의 초신성을 살펴봤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망원경의 발명 이후로 우리 은하에서는 더이상 초신성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흡사 결혼하려고 집사고 돈 모았더니 님이 떠나버린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대신 우리는 그 망원경으로 다른 은하의 초신성을 열심히 모니터링하고 하고 있고 (아래 사진은 M81은하에서 폭발한 초신성의 모습입니다.) 특히 Type Ia 초신성이 갖는 밝기 일정성을 이용하여 우주 팽창의 증거, 거리 측정의 지표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내 천문학자에 의해 이 이론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사진 : M82에서 폭발한 Type Ia 초신성 (ⓒ UCL Mathematical & Physical Sciences, 2014)
표 : 기원후 나타난 초신성 (ⓒ 스페이스타임즈)

결론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인류가 8개의 초신성을 볼 수 있던 기간은 2,000년 동안 총 124개월이었습니다.(124/48,000) 이 124개월은 초신성이 빛을 내기 시작해서 잃을 때까지의 기간이므로 실제로 밝게 빛나는 기간은 우리 인류 역사상에서 정말 찰나에 불과합니다. 그 초신성의 빛을 볼 수 있던 사람은 엄청난 행운아라 할 수 있겠죠.(티코 브라헤와 케플러는 정말 복받은 사람들이죠.)

또한 위 그래프를 보시면 (표본이 매우 부족하지만) 초신성은 묘하게도 연달아 나타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간격을 보면, 대략 터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터져라 베텔기우스!!! (순전히 제 뇌피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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