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우주를 보다. -6-

가두연 기자 승인 2018.05.10 16:41 | 최종 수정 2019.04.30 11:03 의견 0

“초기조건”의 문제는 대폭발우주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에게 골치아픈 문제였다.

사실 물질의 생성에 관한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풀린다. 바로 정상우주론자였던 프레드 호일의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조지 가모브는 우주의 모든 물질이 우주의 탄생 순간 순차적으로 만들어 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주의 탄생을 믿지 않았던 프레드 호일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우주의 물질 생성은 별에서 이루어 진다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별 속에서는 물질이 합쳐져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지는 격렬한 반응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의 부산물이 빛이라는 존재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반응을 “핵융합반응”이라 한다. 현재 우리의 태양은 수소를 헬륨으로 바꾸는 핵융합반응을 진행 중이고, 이후에는 헬륨을 탄소로까지 바꾸는 반응을 진행할 것이다.

프레드 호일은 이러한 핵융합반응을 통해서 우주의 물질들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태양보다 거대한 별들은(태양은 탄소를 만드는 것이 한계이다.) 철까지 핵융합반응을 진행한다. 그리고 철 이후의 무거운 물질들은 거대한 별이 죽을 때 발생하는 “초신성폭발”의 영향으로 만들어 지게 된다. 즉 우리 지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거대한 별이 죽음으로써 이 모든 물질을 만들어 낸 것이다.

대표적인 초신성폭발 흔적인 게성운(Crab Nebula)
항성의 핵융합반응과 초신성폭발로 인해 우리 우주의 물질들은 만들어졌다.

이러한 프레드 호일의 이론은 과학적으로 보았을 때 오류가 없었다. 단 한가지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우주 전체에 헬륨의 양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었다. 현재 우주의 약 74%(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제외)는 수소로 이루어져 있고 약 25%는 헬륨이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물질이 0.8%를 차지한다.(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까지 포함하면 이 양은 더 적어진다. 수소와 헬륨을 제외한 우리 주위의 물질은 우주 전체의 0.03%밖에 안된다.) 그런데 이러한 헬륨의 양은 프레드 호일의 예상을 훨씬 벗어난 것이었다.

대폭발우주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프레드 호일의 이론을 받아들여 대폭발이론에 맞게 수정하였다. 헬륨이 예상보다 많은 것은 대폭발우주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우주 초기 격렬한 에너지는 수소와 헬륨을 대규모로 만들어내게 되었고, 그 외의 물질들은 프레드 호일이 설명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주 물질의 문제는 쉽게 풀어진다.

문제는 “초기조건”의 문제이다. 어떻게 우주는 현재 이러한 모습으로 “계획”되어졌는가?

여기에 한가지 문제가 추가된다. 왜 우주는 어디서나 균일하고 어느방향으로든 똑같을까? (이 문제를 우주의 균일성, 등방성의 문제라 한다.)

우주배경복사
우주는 지극히 균일하고 등방하다. (미세한 요동은 양자역학의 영향이다.)

우리 지구에서 한쪽 방향으로 100억광년 떨어진 우주와 그 반대방향으로 100억광년 떨어진 우주를 생각해보자. 두 공간은 거리상 200억광년 떨어져 있다. 우주의 나이가 138억년이니 두 공간은 서로 단절되어있는 것과 같다. (빛, 정보 모두 두 공간 사이를 여행하기에는 우리 우주의 나이가 적다.) 하지만 두 공간은 우주배경복사와 물질이 균일하게 퍼져있다. 또한 우주는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똑같다. 지표면은 위와 아래가 있다. 중력은 아래로 작용하고 대부분의 물질은 아래쪽에 집중되어있다. 분명 지표면에 살고 있는 우리는 방향성이 있다. 하지만 우주 개념으로 들어가면 그러한 방향성을 도저히 찾아낼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우주 공간 어딘가 떠 있다면 어디가 어느 방향인지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물론 성단이나 은하처럼 작은 범위에서는 방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주 천체로 보았을 때 우주는 방향성이 없다.)

서로 단절되어 있는 두 공간을 연결하는 어떤 특이한 메커니즘이 존재하는 것일까? 빛보다도 빠른 무엇인가가 둘 사이에 정보를 전달하고 물질을 균일하게 유지하는 것일까?

이 문제를 풀어낸 것은 한 물리학자의 간단한 주장이었다. 앨런 하비 구스(Alan Harvey Guth, 1947~)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아주 간단한 주장을 하였다. 초창기 우주가 급속도로 팽창하였다는 것이다. 이 팽창속도는 빛보다도 빠르다.(그렇다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공간 자체가 팽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이론을 “급팽창이론(인플레이션 우주론, Inflation Theory)”이라 한다.

이 간단한 주장이 “초기조건”의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하였다. 우리의 우주가 평탄한 이유는 우리가 우주의 굴곡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표면에서 지구를 보는 것과 비슷한데 지구는 분명 구(毬)모양이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그저 평탄할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급속도로 팽창한 우주의 일부분만을 관측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우주는 평탄해 보인다. 또한 우주가 균일,등방성을 갖는 이유도 설명이 가능하다. 초기 우주는 좁은 공간에 모여 있었다. 그러한 우주가 급속도로 팽창하였으니 우리의 우주는 어디서나 균일하고 어느방향으로나 같다.

앨런 하비 구스(Alan Harvey Guth, 1947–)
급팽창이론을 발표하였고 그 공로로 2012년 기초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인플레이션 우주론으로 대폭발우주론은 완성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우주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저작권자 ⓒ 스페이스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